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제국 해군 (문단 편집) == 역사 == 독일 제국 해군의 시초는 1867년에 창설된 ′연방해군′이었다. 사실상 해군력이 전무했으며 [[독일 연방]]시절의 가맹국들이 보유했던 해군력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명목상 [[프로이센 왕국]] 왕립 해군의 후신인 탓에 프로이센군과 동일한 규정이 채택되었으며 독립된 군사 조직이라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1888년까지 '''육군 장교들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 1872년, 킬에서 제국 해군 사관학교가 설립된 데 이어 '기계정비단'이 설립되고 1873년에는 '의료단' 1879년에는 '어뢰공병대'가 창설되어 기본적인 해군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2년 부터 함대를 현대화 하기 위해 10년 계획으로 총 '''2억 2천만 금마르크'''가 투자되어 8척의 장갑호위함, 20척의 경초계함, 7척의 [[모니터함]],2척의 수상포대, 6척의 식민지통보함[* 본국과 식민지간 연락 및 경비 임무 등에 종사하는 함정을 일컫는다.], 18척의 [[건보트]], 28척의 [[어뢰정]]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해당 전력 증강 금액의 4분의 1은 [[보불전쟁]]에서 패전한 프랑스가 지불한 배상금에서 충당했다. 1883년 시점에서 독일 제국 해군은 7척의 장갑호위함과 4척의 장갑초계함으로 다른 해군 열강들에 비해 매우 빈약한 해군력을 지녔다. 이는 독일 제국 해군의 1차적 목표가 프랑스, 러시아 제국 등 해군 열강으로부터의 해안 방어였기 때문이었다. 1887년이 되어서 2개의 어뢰정 사단을 편성했고, [[킬(독일)|킬]] 운하를 개통함으로써 [[북해]]와 [[발트해]]에 따로 떨어져있던 독일 제국의 함대가 서로 교통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독일 제국 해군이 본격적으로 해군 강국으로 팽창되게 된 시점은 [[빌헬름 2세]] 때부터였다. 그는 자국을 영국과 프랑스와 동급인 세계 열강으로 키우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식민지 건설을 추진하고 이를 수반할 막강한 해군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육군의 건설까지 상당부분 희생하면서까지 해군을 야심차게 증강하고자 하는 빌헬름 2세의 계획은 [[소 몰트케]], [[알프레트 폰 슐리펜|슐리펜]], [[알프레트 폰 발더제|발더제]] 등의 육군 출신 군 수뇌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자 빌헬름 2세는 해군 증강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다. 1889년, 독일에 해군 내각이 설립되어 육군 내각과 동일한 수준의 힘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890년부터 1894년까지 독일 최초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브란덴부르크급 전함 4척이 건조된 데 이어서 1895년부터 1901년까지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전함 5척이 건조되면서 독일 해군의 규모는 커져갔다. 순양함 전력도 한층 강화되었다. 1892년에는 독일 해군 최초로 3축 프로펠러를 장착한 [[방호순양함]] 카이제린 아우구스타[* 실험적 성격도 강해서 단 1척밖에 건조되지 않았다.]이 취역했고, 이어서 빅토리아 루이제급 [[방호순양함]] 5척이 1899년까지 전력화되었다. 그리고 1897년에는 독일 해군 최초의 [[장갑순양함]] 퓌르스트 비스마르크가 진수되었다. 이러한 해군 증강을 법적으로 정당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은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이었다. 그는 의회를 설득해 해군 증강을 뒷받침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으며, 1898년에 통과된 최초의 해군 법안은 1904년까지 건조될 전함 19척, 8척의 장갑순양함, 12척의 대형순양함,30척의 경순양함에 대한 정비를 승인하며, '''무기한으로 해당 배들을 25년마다 교체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또한, 1900년에 통과된 해군 법안은 38척의 전함, 20척의 장갑순양함, 38척의 방호순양함을 할당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법안에 '''전반적인 비용 제한이 설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금으로 충당되는 기존 재정으로는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계획이었고 독일 제국은 해당 계획을 삭감하기 보다는 '''막대한 부채로 해결했다.''' 이러한 과정에 힘입어 독일 제국 해군은 '''프랑스 해군과 러시아 제국 해군을 뛰어넘을 수준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지니게 되었다.'''[* 당대 프랑스 해군은 [[청년학파]]의 영향으로 볼품없는 연안해군으로 전락했으며, 러시아 해군은 독일 해군보다 더 많은 전투함을 뽑을 수 있는 국력도 되지 않았고 러시아 해군의 자랑거리였던 발트 함대도 [[러일전쟁]]으로 날려먹으면서 타격도 컸다.] 그러나 티르피츠 제독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당대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을 격파하는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